
「클리셰 SF 세계관의 크리쳐는 그어그어하고 울지 않는다」
⋯⋯그 첫번째 이야기
CoC 7th Fan made scenario ✶ w. 청서
폐부에서부터 강한 압력이 치솟고,
이내 거센 기침 소리와 함께 당신은 핏덩어리를 토해냅니다.
그와 동시에 레몬은 눈을 뜹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한 겨울날의 추위 속,
회색 하늘 위로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송이들,
어깨의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끔찍한 비린내에 머리가 아픕니다.
불쾌한 기분에 팔이나 다리를 움직여본다면, 여기저기 끈적하게 말라붙은 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진 머리카락은 핏물에 젖어 축축합니다.
몸에 꼭 맞는 검은 군복이 지독하게 무겁습니다.
생명줄처럼 쥐고 있던 총은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입니다.
그보다,
레몬의 상처에서 흐른 피가 차가운 웅덩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1D100<=6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85 > 85 > 실패
(1D2) > 2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오래된 라디오의 잡음 섞인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안전지대가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이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출생지, 부모,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조차 기억해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곳에 누워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요.
바짝 마른 입에서 혈향이 느껴지고,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치밉니다.
피 웅덩이 속에 계속 누워있다간 다양한 사인 중 하나로 죽어버리고 말 테니 욕구대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방에 눈이 쌓여 질리도록 새하얗습니다.
이곳은 도시 외곽,
아득하게 휘몰아치는 검은 눈보라 너머로 야경이 빛나고 있습니다.
드문드문 어둠이 잠식한 도시의 야경은 어쩐지 위태롭고 쓸쓸합니다.
상처를 보아 하니 팔이 달랑달랑하게 달려 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제법 잘 움직이네요.
던져둔 총을 주워들어도 크게 부담이 가지 않겠습니다.
(1D100<=7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0 > 10 > 대단한 성공
고소한 향기가 코를 자극합니다.
10m쯤 떨어진 곳에서, 불 앞에 앉은 낯선 사람이 등을 돌린 채 무언가를 먹고 있습니다.
라디오 소리는 저곳에서 들리는 것 같네요.
원인을 알 수 없는 허기와 살벌한 추위가 레몬을 괴롭힙니다.
저 사람에게 무언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주지 않는다면 억지로 빼앗는다거나, 아무쪼록 총을 가진 당신에겐 많은 방법이 있겠죠.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집니다.
매끄러운 눈의 등을 밟을 때마다 볼품없는 소리를 내며 발이 잠깁니다.
온기, 식량, 그 외 다양한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들뜨기까지 합니다.
어쩐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기도 해요.
등을 돌린 사람은 당신이 바로 뒤에 왔음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습니다.
레토르트 식품의 푹 익은 건더기를 일회용 포크로 휘저을 뿐, 라디오 소리에 푹 빠져 있습니다.
여전히 최강의 인류를 운운하는 걸 보니, 분명 시답지 않은 가십 뉴스겠지만요.
문득 레몬은,
자신의 숨이 굉장히 거칠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이 사람에게 왔나요?
그러니까, 여긴 너무 춥고, 배가 고프고, 그래서, 식량과 온기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아, 맞습니다⋯⋯.
"무엇이든 좋으니 죽여버리고 싶어."
라고,
생각해버렸는지도(어쩌면 말해버리기까지 했는지도!) 몰라요.
부추기듯 두드리는 심장 고동 소리를,
당신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낯선 사람에게 달려듭니다.
아니, 달려들었을 겁니다.
분명 달려들지 않았나요?
작동 방식도 알지 못하는 총은 내던지고, 무기가 될 만한 무언가를 잡는다거나, 없다면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세운다거나⋯⋯
대충, 그랬던 것 같은데⋯⋯.
―――!
굉음이 울리고,
허수아비가 쓰러지는 것처럼 무기력한 퍽! 소리와 함께,
레몬의 세상이 한 번 크게 뒤집히더니, 어느덧 낯선 사람은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굽이치는 백발,
양안에 다른 양상으로 박힌 에메랄드빛.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부는 바람과 내리는 눈,
그것들로만 이루어진 전부 잿빛인 세계에서⋯ 홀로 살아서.
문득, 레몬은 가슴이 허합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이를테면 심장이라거나.
이런, 내려다보니 정말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야 할 장기들은 존재하지 않고, 휑한 구멍이 붉고 끈적한 액체를 토해내고 있을 뿐입니다.
어디선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가요?
정말로 잔인한 장면은 장기를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광경이라고.
대단해요! 엄청난 위력이에요! 아마 거대한 주포 같은 것에 맞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가하게 이런 걸 추측하고 있을 땐 아닌 것 같지만요.
피를 토할 틈도 없이 시야 너머의 모든 것이 어두워지며, 몸을 지탱하고 있던 의식이 멀어집니다.
강렬한 충격과 온몸의 세포가 전멸하는 듯한 고통이란!
레몬은 어렴풋하게나마 자신은 이제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끝? 정말?
당신의 삶이 마무리되는 걸까요?
아니, 안 돼요!
(1D100<=58)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75 > 75 > 실패
혼란스러워할 무렵, 시야가 가물가물한 레몬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옵니다.
낯선 사람의 손에 들린,
끝에서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검고 긴, 섬세하고 복잡한 기체는,
잠에서 깨어난 당신이 집어든 총과 꼭 닮은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날파리처럼 웅웅거리던 지겨운 라디오 소리가 말을 끝맺습니다.
(1D100) > 59
제 59번째 안전지대는 오늘도 지켜지고 있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모든 것이 흐려집니다.
낯선 사람은 무전기를 고쳐 잡고 당신에 대해 보고합니다.
사무적인 어조는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갑니다.
와우! 저 사람은 정말 어딘가의 SF 장르 클리셰 영화 등장인물처럼 말하는군요.
그런데, 방금 라디오가 뭐라고 말했죠?
정말, 이상⋯⋯
⋯⋯
폐부에서부터 강한 압력이 치솟고, 이내 거센 기침 소리와 함께 당신은 핏덩어리를 토해냅니다.
오, 고통.
그와 동시에 레몬은 눈을 뜹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한 겨울날의 추위 속,
회색 하늘 위로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송이들,
가슴의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끔찍한 비린내에 머리가 아픕니다.
불쾌한 기분에 팔이나 다리를 움직여본다면, 여기저기 끈적하게 말라붙은 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진 머리카락은 핏물에 젖어 축축합니다.
몸에 꼭 맞는 검은 군복이 지독하게 무겁습니다.
생명줄처럼 쥐고 있던 총은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입니다.
그보다, 레몬의 상처에서 흐른 피가 차가운 웅덩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1D3) > 2
이전 소생 직후와는 달리, 혼란스러움은 한결 덜합니다.
짜증 나는 라디오 소리는 더 들리지 않습니다.
레몬이 한층 더 어둡게 가라앉은 회색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볍게 눈 바닥을 밟는 군화 소리가 가까워집니다.
총을 고쳐잡은 리치가 근처에 다가와 묻습니다.
리치는 레몬을 처참하게 살해한 뒤에도 가벼운 말을 던지고 있지만, 당신의 소중한 전우입니다.
어제까지는 그랬죠.
시간이 꽤 흘렀는지, 주변을 둘러보아도 음식과 모닥불은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분명 이전 임무를 끝낸 직후에 레몬이 사망했던 것 같습니다.
소생 직후에는 10번 중의 1번꼴로 이번처럼 정신이 이상해지는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리치가 물리적인 '리셋'을 도와줬던 기억이 납니다.
죽음은 익숙하지만 다정하지 않고,
소생 직후의 첫 숨은 유난히 차갑습니다.
두 사람은 장비 점검을 끝내고 일어섭니다.
매서운 칼바람에 반복 재생을 눌러둔 영상처럼 규칙적으로 머리카락이 흔들립니다.
A시의 오늘 날씨는 영하 20도,
방한복을 뚫고 싸늘한 냉기가 침입합니다.
리치가 무어라 더 말하려는 듯 입을 벙긋거리지만, 이내 거대한 소음에 묻혀버립니다.
쌓인 눈을 날려버리는 강한 바람, 그리고⋯⋯
헬기입니다.
두 사람을 태운 헬기는 상공으로 날아오릅니다.
목표 지점은 1주일 전 크리쳐에게 점령당한 A시,
전력이 채 끊기지 않은 유령 도시.
창 아래로 펼쳐진 야경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음울한 빛 사이 드문드문 자리 잡은 어둠은 분명 도시의 예비 전력이 다해가고 있기 때문이겠죠.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닙니다. 전력이 끊긴다면 생존자를 구해낼 수 있는 확률도 떨어질 테니까요.
헬기의 문이 열리고, 따가운 겨울바람이 휘몰아칩니다. 복잡한 머릿속이 한결 식는 것 같습니다.
발각당할 위험이 있으므로 헬기는 착륙하지 않습니다.
같은 이유로 낙하산 또한 없습니다.
내려갈 방법은 단 하나.
목표 착륙 지점이 점점 가까워지면⋯⋯
라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리치와 레몬은 맨몸으로 도심에 뛰어듭니다.
────쿵!!!
허공을 한 바퀴 돈 레몬이 착지한 시멘트 바닥에 굉음과 함께 금이 가며, 사방으로 파편이 흩어집니다.
파괴력과는 달리 미끄럼틀을 타듯 능숙한 착지입니다.
문제는 조금도 없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머리로 박을 수도 있지만, 뇌가 터져도 살아나는 체질이라 가능한 작전이죠.
사실, 이 소리 때문에 발각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헬기보다는 눈에 덜 띄는 방법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우선 두 사람 몫의 짐가방은 내려두고,
아직 떨어지는 중인 리치를 받아볼까요.
(1D100<=99)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80 > 80 > 보통 성공
이제는 익숙한 낙법입니다.
턱, 소리와 함께 레몬은 리치를 두 손으로 받아 사뿐히 안아 올립니다.
눈 내리는 도심이 한눈에 보이는 높은 건물의 옥상, 단둘이네요⋯⋯
물론, 낭만적인 구석은 없습니다.
현재 두 사람이 있는 곳은 굴지의 대기업, B사의 옥상입니다.
A시의 중심지이자 가장 높은 곳으로, 도시의 상황을 파악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이죠.
새벽 2시,
시야 아래로 새카만 밤의 어둠이 펼쳐지고,
그 위에 창백한 도심의 빛이 번집니다.
리치는 주변을 둘러본 뒤 지도를 펼쳐 다시 보여줍니다.
리치의 손가락 끝이 지도 표면의 점을 하나씩 짚습니다. 눈으로 그것을 좇는다면,
A시의 긴급 대피 구역인 학교, 백화점, 병원, 지하철역입니다.
조사 가능 구역: [학교], [백화점], [병원], [지하철역]
한 구역의 조사가 끝나면 행운 판정을 진행합니다.
실패: 크리쳐와 전투
성공: 아이템 획득 이벤트
행운 판정에 성공하면 비상 식량 (HP 1D3 회복), 음료수 (이성치 1D3 회복) 중 하나를 랜덤하게 획득할 수 있습니다.
⋯⋯
「지하철역」
긴급 대피 구역으로 설정된 곳은 A역입니다.
두 사람은 역 내부로 이어지는 계단을 밟고 진입합니다.
앞서 걷던 리치가 레몬이 있는 쪽으로 돌아보며 묻습니다.
그 말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컴컴한 역 내부로 떨어집니다.
리치는 말을 이어가며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갑니다.
(1D100<=8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35 > 35 > 어려운 성공
문득 떠오릅니다.
좌석에 스며드는 온난한 햇볕.
창밖 너머로 스쳐간 넓고 푸른 잎들.
지상에 난 역에 내리면, 후끈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휩쓸고 지나가지만,
더위보다는 따뜻한 포옹처럼 느껴지는 온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임에도, 어째서 무의식에 부른 그 장소가 생각났을까요?
역 내부로 들어서면,
역도 생각도 비어 있습니다. 이곳에 생존자 무리는 없습니다.
(1D100<=5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49 > 49 > 보통 성공
(choice[비상식량,음료수]) > 음료수
오, 슬러시.
슬러시가 된 사과 주스를 획득합니다.
⋯⋯
「학교」
C고등학교의 긴급 대피 구역으로 설정된 곳은 강당입니다.
잠기지 않은 정문 너머, 운동장은 티 하나 없이 새하얀 눈이 이불처럼 덮여 있습니다.
레몬이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두툼한 군화 아래로 발자국이 새겨집니다.
(1D100<=8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93 > 93 > 실패
문득 강당으로 걸음을 옮기던 레몬의 시야에,
학교 꼭대기에 매달린 깃발이 보입니다.
시린 바람에 휘청이듯 흔들리는 깃발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짙은 우울이 내려앉습니다.
서둘러 임무를 처리하고 한잠 늘어지게 자고 싶네요.
강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 휑한 어둠만이 두 사람을 반깁니다.
(1D100<=5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20 > 20 > 어려운 성공
(choice[비상식량,음료수]) > 비상식량
오, 햇X.
비상식량을 획득합니다.
그때,
낌새가 이상합니다.
레몬이 가히 동물적인 예감을 발휘해 성큼 물러섬과 동시에,
딛고 있던 바닥이 내리쳐오는 원뿔에 의해 반파됩니다.
날렵하게 몸을 굴려 피했으나, 그곳에는⋯⋯
어느새 레몬과 리치를 포위한 크리쳐들이 몸을 둥글게 말며 뾰족한 돌기를 세웁니다.
얼핏 보면 아름다운 금속 모형처럼 보이는 이 크리쳐는, 분명 금속형 크리쳐입니다.
(6D6) > 19[1,6,3,2,6,1] > 19
순서는 레몬-리치-크리쳐로 진행합니다. 약식 룰이므로 반격 및 회피는 없습니다.
레몬과 리치: '사격'을 판정하며, 성공시 4D6을 굴려 '한 번에 몇 마리를 처리했는지'를 결정합니다. 판정 실패는 공격 실패로 취급되며, 재판정 없이 다음 순서로 넘어갑니다.
크리쳐: 전투 턴에서 순서가 올 때까지 절반 이상 남아 있을 경우 탐사자에게 1D3의 피해를 줍니다. 생존 크리쳐의 수가 과반수 이하일 경우 도망을 시도합니다. 이 경우, 레몬이 추격한다면 민첩 대항입니다.
(1D100<=7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79 > 79 > 실패
발포에 성공했으나 금속 구체가 몸체를 지네처럼 변형해 회피하는 속도가 더 빨랐습니다.
(1D100<=9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81 > 81 > 보통 성공
(4D6) > 14[2,6,1,5] > 14
굉음과 함께 탄환이 무리의 중심으로 파고듭니다.
다시 한번 리치가 찰칵, 하고 방아쇠를 당기자 발사된 탄환이 쪼개지며 각기 다른 일직선의 방향으로 향합니다.
탄환은 한순간에 14마리에 달하는 크리쳐의 핵을 꿰뚫고,
단숨에 사살당한 크리쳐들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무너져내립니다.
5마리만 남은 크리쳐들은 아우성치며 도망을 시도합니다.
(1D100<=99)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28 > 28 > 어려운 성공
가긴 어딜 가.
레몬은 발 빠르게 도약해, 지네처럼 변한 금속형 크리쳐의 꼬리를 잡아냅니다.
붙잡힌 크리쳐들이 반동에 먹혀 균형이 무너지면,
나이스 타이밍!
(4D6) > 7[2,2,1,2] > 7
깔끔하게 포격에 성공.
탄환에 정통으로 맞은 크리쳐들은 조각난 보석과 고철 덩어리로 분해되며 바닥을 나뒹굽니다.
우리는 다시 지나온 장소를 돌아보기로 합니다.
놓친 것이 있나 살펴보아도 현장은 답하지 않습니다.
그즈음 리치가 멈춰 서는군요.
그즈음이었습니다.
(1D100<=7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39 > 39 > 보통 성공
웅웅거리는 듯한 소리를 듣습니다.
아주 미약하고, 끊어질 것처럼 가늘고 얇은 소리지만 이명은 아닙니다.
리치는 듣지 못한 듯 여전히 지도에 집중한 표정입니다.
직감으로 따라가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생존자가 보내는 구조신호일 수도 있겠네요.
소리가 들리는 곳을 짚어 나가며 이동합니다.
레몬과 리치가 도착한 곳은 빈 공터이며, 공교롭게도 소리는 더 들리지 않습니다.
거짓말처럼 끊겨버린 신호에 리치가 의문을 품고 총을 고쳐잡습니다.
그때,
또 다른 리치가 저 너머에서 걸어 나옵니다.
그는 당신의 옆에 있는 리치를 보고 사색이 되어 이렇게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리치(여태까지 당신 곁에 있었음)의 표정이 해괴해집니다.
똑같은 얼굴의 두 사람.
논쟁은 혼란스럽지만 볼거리는 되는 것 같습니다.
(1D100<=8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47 > 47 > 보통 성공
98%의 하급 크리처들을 처리하는 게 우리의 일이지만,
간혹 특수한 능력을 갖춘 상급 크리쳐와 조우하기도 했죠.
본능적으로 둘 중 하나는 상급 크리처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허술한 저놈이 크리쳐겠지요.
다른 누구도 아닌 리치를 헷갈릴 리가 없잖아요.
긴 시간 함께해온, 당신 깨기 전에 혼자 밥 처먹은 당신의 동료인걸요.
자신을 겨누자, 가짜 쪽은 말없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찰나의 순간이 흐른 뒤.
리치의 형태를 가지고 있던 크리쳐의 얼굴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길쭉한 팔을 휘두릅니다.
퍽!
그 타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맞은 리치가 반쯤 날아갑니다.
레몬이 공격하기 위해 자세를 고치던 그때,
크리쳐가 레몬의 방향으로 몸을 돌립니다.
크리쳐는 어째서인지 공격하지 않으며, 흐물흐물 반쯤 녹은 입으로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우물거립니다.
그는 천천히 팔(로 추정되는 것)을 뻗어 당신의 양어깨를 움켜쥡니다. 역한 냄새가 밀려옵니다.
공격은 가능합니다.
가능합니다. 당신의 힘으로 불가능할 리가요!
여태껏 단 한 번도, 크리쳐가 의사소통을 시도해온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요?
그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익숙한 파열음과 함께, 크리쳐는 더 말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너덜너덜한 머리는 축 늘어지며 당신의 손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엎어집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마가 찢어진 리치가 피곤한 표정으로 머리를 문지르고 있습니다.
리치가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내며 조금 전까지 넘어져 있던 바닥을 따라갑니다.
빼곡하게 타일로 채워져 있으나, 리치가 가리키는 곳의 타일만 다른 칸과 재질이 다릅니다.
레몬이 손끝을 밀어 넣고 타일을 걷어내면,
아! 생존자들이 숨어 있던 벙커를 발견합니다.
대피 구역이 전부 크리쳐에게 점령되어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숨어 있었군요.
쓰러진 와중에 바로 재질 차의 이상함을 알아차리다니, 역시 리치입니다.
이것으로 구출 성공입니다.
레몬과 리치에게 구해진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계속해서 감사를 표합니다.
"아, 정말 살았어요."
"말로만 듣던 분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우린 안전해!"
"아아, 신이시여⋯⋯."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생존자들은 바깥 공기를 마시며 얼싸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최강의 인류'라고 불리는 레몬과 리치를 신기한 듯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인을 요청하거나, 심지어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핸드폰을 들이밀며 같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합니다.
물론 레몬과 리치는 거절해야 합니다. 연예인이 아닌걸요!
거절당한 사람들의 표정은 좋지 않습니다.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악에 물든 것 같아, 민망할 지경입니다.
덩달아 이쪽을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표정 역시 최악이네요.
그래요, 벙커 안에만 있기 힘들었겠죠. 이해하려거든 뭐 할 순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생각해본 탓일까요? 레몬의 마음이 쓰라려 옵니다.
아니, 마음이 아픈가요?
울컥,
하고 혈액 덩어리를 뱉은 레몬은 그제야 '뾰족한 무언가'가 가슴을 관통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호흡이 어렵습니다.
아, 상급 크리쳐의 숨이 붙어 있었군요.
간신히 고개를 돌린 레몬은 원망스러운 듯 당신을 바라보는 크리쳐의 형형한 두 눈과 마주합니다.
뒤늦게 리치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만⋯⋯
아무래도 늦은 것 같습니다. 불타는 듯한 통증과 함께 레몬의 의식이 멀어집니다.
그래도 생존자들을 구출한 후에 죽어서 다행이에요.
임무의 절반은 성공했으니, 레몬이 아주 잠깐 쉬는 것 정도는 용서해주겠죠.
풀린 눈으로 쓰러지는 레몬을 리치가 받아냅니다.
⋯⋯
당신은 눈을 뜹니다.
폐부에서부터⋯⋯ 이런, 이제는 이 상황도 지겨울 정도네요.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키려던 레몬은 찌릿한 통증에 힘을 잃고 도로 누워버립니다.
가슴 부근이 숨을 쉴 때마다 칼로 살을 저미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이건⋯⋯ 이상합니다.
소생 후의 컨디션은 최고조여야 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낯선 천장과 함께 고개를 돌려 상황을 파악해보지만, 이곳은 레몬이 모르는 사람의 방입니다.
머리맡에 있는 귀여운 인형이 리치의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어두컴컴한 창문 너머로 푸른 조명이 넘어오는 것을 보니, 일단 레몬은 여전히 A시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리치가 죽은 레몬을 길바닥에 둘 수 없어 적당한 민가 안으로 들여온 것 같네요.
방에는 없는 듯합니다. 거실로 나가볼까요.
거실로 나가자,
머리에 붕대를 감은 리치가 소파에 앉아 무전기를 보고 있습니다.
레몬의 기척에 고개를 든 리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1D100<=7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3 > 13 > 대단한 성공
리치의 거동이 낯섭니다.
평소의 그보다 조금 더 굼뜨고 불편해 보이네요.
단순히 머리를 다쳐서 그렇다기엔 더 아픈 곳이 있는 것 같습니다.
(1D100<=5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90 > 90 > 실패
리치는 특수한 신호가 뜨는 무전기의 화면을 레몬에게보여줍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앞으로 1시간 내로 A시를 빠져나가야 하니까요.
이후 두 사람은 민가를 빠져나옵니다.
⋯⋯
X 제약회사에 도달하는 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크리쳐들로 가득합니다.
수 차례 마찰이 일어납니다.
(6D6+6) > 20[3,3,1,5,4,4]+6 > 26
낮은 울음 소리와 역한 냄새가 밀려옵니다.
그리고는,
온다,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레몬과 리치가 등을 맞댑니다.
끈적한 점액질의 액체가 바닥이나 벽에 닿을 때마다 뿌연 연기와 함께 탁한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퇴로를 막아선 생체형 크리쳐와 조우합니다.
(1D100<=7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73 > 73 > 실패
발포한 탄환이 근소한 차이로 빗나갑니다. 역시 조준을 천천히 해야 했나?
(1D100<=9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42 > 42 > 어려운 성공
(4D6) > 16[4,6,1,5] > 16
크리쳐들은 재빠르게 미끄러운 몸을 옮겨 마치 저들끼리 수군대듯 들썩입니다.
본래라면 도망갈 타이밍인데요.
주변에 몰린 동료의 수에 자신감을 얻은 건지, 도망하는 대신 다시 점액질의 팔을 휘두릅니다.
(1D100<=99)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87 > 87 > 보통 성공
(1D100<=99)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74 > 74 > 보통 성공
두 사람은 기척을 알아채고 순식간에 거리를 벌립니다.
(1D100<=7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52 > 52 > 보통 성공
(4D6) > 22[5,6,5,6] > 22
좋아요, 숨을 고르고 머리를 굴리자고요.
그럼에도 복잡한 수식 계산에 걸리는 시간은 단 0.01초,
레몬은 세차게 바닥을 걷어차며 공격을 피해 뛰어오릅니다.
거꾸로 시야가 뒤집힌 상태로 계산된 궤도에 탄환을 박아 넣은 뒤 또다시 찰칵.
탄환은 당신을 배신하지 않으므로 찾아오는 것은 적의 죽음뿐입니다.
딛고 선 바닥에는 '크리쳐였던 것'의 잔해만이 가득합니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크리쳐가 많습니다.
휴식이 간절해지는 것은 비단 푸념만이 아닙니다.
그조차도 흐릿해 보이는 건 착각일까요.
거듭되는 전투에 두 사람의 체력이 떨어지고, 정신력이 흔들립니다.
⋯⋯
X제약은 공기업은 아니지만, 치료용 연고의 판매로 대중들에게 친숙합니다.
신호가 나오는 곳은 X제약의 지하입니다.
1층까지 진입은 수월했으나 지하로 가는 길은 자동 개폐 시스템으로 막혀있습니다.
개폐를 해제하기 위해선 경비실로 들어가야겠네요.
리치는 벽에 손을 짚고 내부를 빠르게 훑어봅니다.
레몬 역시 개폐 버튼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리던 중,
책상 위의 컴퓨터를 발견합니다.
수십 개의 화면이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는 감시카메라 화면입니다.
회사 외부 곳곳에 있는 감시카메라는 사람이 없는 지금까지도 작동 중이지만, 내부의 카메라는 대부분이 작동되지 않습니다.
(1D100<=7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9 > 19 > 어려운 성공
문득,
레몬은 카메라에 비친 익숙한 장소를 발견합니다.
주차장 너머로 작게 보이는 곳은 분명 3일 전 레몬이 죽어버린 곳입니다.
레몬의 사망 직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는 설명받지 못했었죠.
익숙한 장소를 비추는 영상의 확대가 가능합니다.
20분 남짓입니다. 생각건대 아직 시간은 충분합니다.
두어 번 클릭하자, 그 영상이 촬영된 날짜와 시간대를 전부 확인할 수 있습니다.
3일 전 날짜를 입력한 뒤 확인해봅니다.
⋯⋯
사방에서 안타까운 비명이 터져 나옵니다.
리치가 쓰러지는 레몬의 몸을 받아내며, 군화 굽으로 쓰러져있던 상급 크리쳐의 핵을 터뜨립니다.
한탄하듯 말한 리치는 레몬의 눈을 감겨주곤 시체를 바닥에 눕힙니다.
라고 말하면서요.
이변은 잠시 후에 발생합니다.
분명 죽었을 터인 레몬의 몸이 두어 번 움찔거립니다.
리치가 생존자들의 신원을 체크하느라 여념이 없을 때, 늘어져 있던 시신이 비척비척 일어섭니다.
끈에 매달린 인형처럼 흔들거리는 레몬을 발견한 생존자 하나가 의문을 표합니다.
이상한 기미에 고개를 돌린 리치의 표정이 경악에 물듭니다.
시민들이 웅성거립니다.
"이상하네요, 방금 목숨이 끊어진 게 아니었나요?"
"어떻게 되살아날 수 있는 거지?"
그때,
레몬이 팽팽하게 웅크리고 있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그들의 틈에 파고듭니다.
완전히 방심했던 리치는 레몬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기에, 방어하지 못하고 걷어차입니다.
우득,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리치는 마른 땅바닥을 뒹굽니다.
레몬은 리치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이를 세워 시민을 공격하지만, 몇 초 뒤 달려든 리치에 의해 저지됩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리고, 내동댕이치고, 엉겨 붙어 목을 조르고, 끔찍한 파열음이 들리는⋯⋯
그 모습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습니다.
(1D100<=56)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95 > 95 > 실패
이후의 일은 평소와 같습니다.
아니, 대피 구역에 혈흔이 낭자하다는 사실을 제해야 할까요.
리치는 살아 있는 시민을 먼저 대피시키고 당신에게 탄환을 꽂아 넣습니다.
참담한 표정이 스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시체를 데리고 장소를 벗어나는 것으로 끝.
멀리 선 그 사람은 어느덧 찾아낸 개폐 버튼을 누르고 있습니다.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면, 두 사람은 정확한 신호의 출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신호는 지하 4층 제약 연구실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면 황량한 연구실의 내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한 남자가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이 정리된 지금 볼 수 있는 건 많지 않네요.
조사 가능 오브젝트: [엎어진 남자], [테이블], [벽면의 서랍]
새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는 4~50대로 보입니다.
남자는 몇 시간 전에 이미 숨이 끊어진 것 같습니다.
손에 들린 핸드폰에는 구조신호를 보냈던 흔적이 있습니다.
연구 일지를 정리한 종이가 늘어져 있습니다.
(1D100<=6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33 > 33 > 보통 성공
(1D100<=99)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71 > 71 > 보통 성공
[연구 일지]
학회의 낯선 이는 자신이 외계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그의 소지품 중 작은 금속 크리쳐의 암수 한 쌍을 손에 넣은 이후, 나는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연구 일지 - C.V]
크리쳐의 무한한 재생 능력은 경이로웠으나, 핵이 제거되면 사망해버리는 단점이 있었다. 나는 이것을 보완할 방법을 찾기 위해 금속 크리처 핵의 중심 물질, C.V를 채취해 다양한 실험체에게 주입했다.
대부분이 견디지 못하고 흉하게 녹은 채 움직였으며, 핵이 제거되면 사망하는 성질은 유사했다. 종종 특수한 능력을 갖춘 채, 다른 녀석보다 지능 있는 개체가 나타나기도 했으나……. 이들도 역시, 핵의 제거와 동시에 죽음에 이르렀다.
그런데, 실험생물 5000마리 중 단 한 마리, 알파만이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며 월등한 능력을 보였다.
[연구 일지 - 알파형 크리쳐]
알파에게서는 핵을 찾을 수 없었으며, 아주 작은 생체기관만 남아있어도 충분히 시간만 주어지면 신체를 재생해냈다. 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 가장 영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알파는 무리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녀석이었다. 나는 알파를 통해 실험체가 우수한 생물일수록 완전한 크리쳐 생성의 성공률이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1년이 넘어갈 무렵,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사건'이 일어나버렸다.
오, 열쇠.
[연구 일지 - 알파의 폭주]
실험실로 돌아왔을 땐 알파가 실험체 대다수를 학살한 후였다. 그건 그야말로 '폭주'였다. 알파가 자신의 동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저능한 크리쳐처럼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이후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를 하던 중, 알파는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과다출혈.
마지막에 있던 폭주 이후 알파는 평범한 실험생물로 돌아갔고, 평범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 전조는 거의 없었다. 사망 후 재생 속도가 차츰차츰 느려지기 시작했던 것 외에는…….
[연구 일지 - 아이디어]
부작용 없이 인간에게 C.V를 쓸 수 있다면, 국내의 군사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겠지.
연구 일지를 다 읽자,
레몬은 생각해냅니다.
자신이
이전,
'최강의 인류'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는 것을요.
당신의 강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AOC에서도 당신의 공로를 인정해 특별한 포상 휴가를 지급했죠.
포상 휴가를 떠나기 전날, 상부에서는 당신을 호출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은 AOC의 건물 꼭대기까지 도달했던 것이 당신의 마지막 기억입니다.
당신은 C.V의 첫 실험체입니다.
이전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학교에서 지루한 수업을 듣던 날.
지하철에서 창밖을 바라본 일,
따뜻한 장소에 내려 가볍게 걸어본 일.
이맘때는 크리스마스던가요.
한 번 가보았던 파티는 감흥이 없었지만,
네모반듯한 무늬에 새겨진 이불에 비친 조명만은 꽤나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퀼트라 부르는군요.
그제야 조금 재밌습니다.
레몬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봅니다.
당신은 이제 괴물이 아닙니다.
당신은, 사람으로 되돌아왔습니다.
(1D100<=5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4 > 4 > 대단한 성공
그 시각,
(1D100<=8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33 > 33 > 어려운 성공
리치가 역겨운 듯 인상을 찌푸리며 편지 꾸러미를 서랍에 내려놓습니다.
빼곡한 서랍에는 다양한 연구 재료가 들어 있습니다.
편지 꾸러미는 그 중 잠겨 있는 한 칸에 들어 있었고,
보낸 이의 것 하나.
그리고 받은 이의 것 하나입니다.
(1)
보내주신 새로운 C.V의 효과를 확인했습니다.
실패작은 늘 그렇듯 안전지대 밖으로 전부 폐기했습니다. 상급은 그나마 성공한 편이지만, 하급은 정말로 쓸 게 못 되는군요.
다음 달 중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AOC에서 협조를 승낙했으니, C.V의 추가적 공급을 요청합니다.
해당 밀서는 확인 후 소각하십시오.
(2)
확인했습니다.
다만, 너무 위험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들어 추가 공급 요청이 부쩍 늘었습니다. 이러다 도심지에 C.V가 유출되기라도 하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
부디 진행 속도를 늦춰주십시오.
적당한 위기감을 조성해 민간인을 통제하는 정도로만 사용한다고 하셨잖습니까.
요즘은 연구 보고서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편지는 서로 다른 글씨체로, 두 번째 편지는 반쯤 구겨져 있습니다. 작성자가 보내지 못하고 보관한 것 같네요.
날짜는 1년 반 전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굳이 이메일이 아닌 손편지로 적은 이유가 무엇일까 했더니, 이건 명백한 밀서였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시 전체를 폭파하겠다는 극단적인 선택,
여태껏 안전지대는 유지되며 한 번도 시 전체가 점령된 적 없었습니다.
시내에 지나치게 많은 크리쳐들.
당신에게 살려달라고 말하던 상급 크리쳐.
(1D100<=8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7 > 17 > 어려운 성공
그렇습니다.
인공적으로 크리쳐를 만드는 C.V라는 바이러스가
A시에 퍼져 시민들이 생체형 크리쳐로 변해버렸으며,
벙커 안에 숨어 있던 사람들만이 공기 중에 퍼진 바이러스를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여태 죽인 생체형 크리쳐는 총 몇 마리, 아니, 몇 명인가요?
(1D100<=54)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31 > 31 > 보통 성공
리치는 대답이 없습니다.
퍼뜩 불안한 예감이 스칩니다.
C.V에 노출된 사람은 크리쳐가 됩니다.
그 기간은 레몬으로서 짐작할 수 없지만,
그렇다면,
3일 이상 노출되었던 리치는?
리치의 뺨은 상기되어 있습니다.
이마에 감겨 있던 붕대가 느슨하게 내려옵니다.
머리의 상처는 어느덧 사라졌습니다. 아니, 오히려 리치의 컨디션은 한결 좋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컨디션과 대조적으로 리치의 얼굴 위로 다양한 표정이 교차합니다.
변화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쪽은 몸의 주인인 리치일 게 뻔합니다.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다음으로 '최강의 인류'라고 불리는 리치는 어차피 언젠가 당신처럼 크리쳐로 개조당할 예정이었겠죠.
단순히 그 시기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당겨진 것 뿐이고요.
리치는 크리쳐가 되었으며,
레몬은 인간으로 되돌아갑니다.
(1D100<=53)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99 > 99 > 실패
(1D5) > 5
(1D100<=8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59 > 59 > 보통 성공
(choice[기억상실,심신성 장애,폭력,편집증,발작적 행동이나 감정 폭발,공포증,집착증,맹신]) > 맹신
(1D10) > 6
어느 순간, 리치의 눈에서 빛이 꺼집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습니다.
레몬이 느리고 무거운 몸에 채 적응하기도 전, 리치가 레몬의 가슴팍을 걷어찹니다.
대응할 틈도 없이 리치에게 휘둘려 벽에 머리를 박고 바닥으로 미끄러집니다.
다시 한번 허공으로 들어 올려진 레몬의 눈에,
아무런 감정도 없이 당신을 내려다보며 목을 조르는 리치의 얼굴이 비칩니다.
소통이 불가한 것 같습니다.
이내 리치는 당신을 내동댕이칩니다.
강한 충격과 함께 당신의 시야와 보이는 모든 것들이 흔들립니다.
머릿속 내내 이명이 들리며 코에서부터 혈액이 흘러내립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고 다시 리치의 모습을 눈으로 좇으면⋯⋯ 리치는 보이지 않습니다.
위에서부터 쿵, 쿵, 쿵, 하고 규칙적으로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며 손에 잡히는 것과 벽을 전부 파괴하고 부수고 있군요.
어쩌면,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방법도 있겠죠.
[일시적 광기 - 맹신]
6라운드 적용
죽음과 소생의 고리는 이제 파트너가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파트너인 내가 응당 '보조'를 물려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요?
상대를 향한 깊고 끈질긴 맹신. 강박은 판단을 어렵게 만듭니다. 회피 판정에 패널티 다이스를 1개 받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레몬이 옥상으로 향하는 도중 몇 번이고 풀려버립니다.
멈출 기미가 없는 코피를 닦아내며 그제야 당신은 깨닫습니다.
인간의 몸은 너무 유약하고, 부드러우며, 한 번뿐인 삶은 부족하다는 사실을요.
벽과 계단은 강한 힘을 싣고 내리친 주먹과 발길질로 움푹 팬 채 부스러기를 흘리고 있습니다.
위로, 위로, 더 위로. 리치의 빠른 발을 따라잡지 못한 레몬은 한참 뒤에서야 옥상에 도착합니다.
잠겨 있던 옥상의 철문은 억지로 열린 것인지, 단순히 그 너머로 가겠다는 의지 하나에 의해 흉한 형태로 휘어져 있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너덜너덜한 문짝을 걷어내면,
리치가 있습니다.
그는 불완전했던 정신을 어느 정도 추슬렀는지, 시선을 건물 아래의 야경에 꽂은 채 눈을 떼지 못합니다.
주먹을 감싸고 있던 장갑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해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있습니다.
이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눈이 쏟아지고,
하늘은 새카맣지만,
여전히 새파랗게 밝은 건물의 빛을 등지고 선 리치의 표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안심하란 듯한 웃음 뒤로 이지가 저물어 갑니다.
다시 탁한 눈을 한 그는 사정없이 달려듭니다.
(1D100<=7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91 > 91 > 실패
총신을 쳐내며 달려든 그가 일순 멈칫합니다.
[최종전]
CoC의 기본 전투룰을 사용합니다. 총기를 소지한 레몬에게 민첩+50 가산점을 부여, 레몬-리치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레몬: 자유 판정 가능. 열기에 덮인 파트너에게 냉정한 이성을 돌려줄 때입니다.
리치: 대인기능으로 회유 불가한 상태. 심리적 저항감으로 인해 공격에 패널티 다이스가 1개 붙습니다.
(1D100<=7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87 > 87 > 실패
시야를 우롱하는 눈보라에, 조준이 어렵습니다.
온통 새하얀 세상 속에서
새하얗게 흩날리는 그 사람을 향해 쏘았다가는
눈도 그 사람도 녹아 내리고 마는 게 아닐까요.
이전의 리치와 다른 것을 알면서도 총구가 흔들립니다.
여전히 당신은 무력한 인간이고,
나는⋯⋯
인간으로 확신한다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1D100<=8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90 > 90 > 실패
(1D100<=7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 > 1 > 대성공
당신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어.
당신이 망설이는 것을 보았어.
당신도 이러고 싶지 않은 거지,
CCTV에 찍혔던 나의 모습처럼.
그 고통의 굴레를 산산이 부수어줄 때입니다.
찰칵,
이후 굉음과 함께 탄환이 빗발칩니다.
관통당한 리치의 흉부에서 잔 빛이 새어나옵니다.
이내 사방으로 빛이 퍼져나갑니다.
새하얀 머리칼이 섬광과 함께 흩날립니다.
빛 사이로 보인 에메랄드빛 눈은 당신을 응시하다 부드럽게 휘어집니다.
고마워.
그렇게 전한 것만 같습니다.
리치의 몸이 난간 뒤로 넘어가기 직전.
당신은 그를 잡아낼 수 있습니다.
이미 시체가 된 그는 대답하지 못하지만,
당신은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첫 소생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폭파되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가능한 한 빠르게 뛰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우는 몸을 가까스로 가누며 X제약을 벗어납니다.
그즈음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손길이 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때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합니다.
이내 장난스럽게 웃어 보인 그는 걸음을 더욱 내달립니다.
야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푸른 빛이 일직선을 그립니다.
내리던 눈이 멎으면,
도시를 잠식한 어둠이 걷혀갑니다.
밝아오는 새벽하늘 너머로 다가오는 헬기가 보입니다.
헬기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경로를 꺾습니다.
헬기에 올라탄 두 사람은 운전사의 무전으로 약간의 잔소리를 듣습니다.
폭발에 휘말리면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몇 번의 꾸지람이 이어진 뒤에서야 헬기는 A시의 밖으로 벗어납니다.
야경이 아름다웠던 도시는 헬기가 완전히 벗어난 뒤에서야 폭발과 함께 불길에 휩싸입니다.
창문 너머의 붉은 빛이 레몬과 리치의 얼굴에 내려앉습니다.
분명 밝아야 하는데, 짙게 내려앉은 그림자는 서로의 표정을 알기 어렵게 만듭니다.
후회하지 않아?
후회하지 않아.
두 사람은 같은 마음을 안고, 더 낮게, 더 깊은 곳으로.
───────
ED 5. 클리셰 SF 세계관의 인간이길 포기하면 안 되나요?
레몬 에이드 생환?
리치 로시오 생환?
파마산 생환
레몬과 리치는⋯⋯
엔딩입니다. 긴 시간 함께 플레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